고기압 힘 못쓰니 주저앉은 장마전선…52일간 물폭탄

입력 2020-08-07 17:06   수정 2020-10-05 16:47


‘7월 장마 후 8월 무더위’라는 기상학 공식이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지난 6월 24일부터 중부지역에 내린 장맛비는 오는 14일까지 52일간 이어져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제주도는 이미 1973년 이후 지속돼온 최장 장마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상청은 이번 비가 끝나는 8월 중순부터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국으로 확장하면서 9월 초까지 전국적으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8월 말까지는 폭염 수준으로 체감온도가 33도 안팎에 이르는 더위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며 “9월 초 날씨도 평년보다는 더울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전역의 날씨가 종잡을 수 없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8년부터 최근 3년간 유독 변화무쌍했다는 평가다. 한반도뿐 아니라 지구적 온난화 영향으로 세계 전역에 이상기후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올해 긴 장마의 원인은 진작 북상해 소멸했어야 할 장마전선이 중국 동북부에 눌러앉은 찬 공기에 막혀 한반도 중부지역에 정체돼 있다는 것이 우선 꼽힌다.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북극의 얼음이 빠르게 녹고, 그 여파로 대기 중 제트기류 흐름이 약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장마는 늘 변화무쌍했다. 1950년부터 2010년까지 장마 패턴을 다룬 학계 자료에 따르면 장마는 비슷한 양상을 띤 해가 거의 없다. 다만 올 장마가 특이한 점은 다양한 저기압이 장마전선에 들락날락하며 게릴라성 물폭탄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장은철 공주대 대기과학과 장마특이기상연구센터장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오호츠크해 기단과 만나 생긴 정체전선이 일정 기간 한반도에 비를 뿌린다는 장마 공식이 완전히 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움직이는 저기압, 한랭전선을 붙이고 다니는 저기압, 고기압과 정면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저기압 등 종류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 ‘하구핏’까지 영향을 미쳤다. 하구핏이 우리나라를 직접 지나간 것은 아니지만, 태풍에 동반된 많은 양의 수증기가 추가 유입되면서 장마전선이 더욱 예측 불가해졌다.
기상청, 예측에 태생적 한계
일각에선 값비싼 장비(슈퍼컴퓨터)를 갖추고도 집중호우와 긴 장마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기상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기상청은 현재 170억원대 슈퍼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사이엔 500억원대 슈퍼컴퓨터를 추가 도입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돌발 변수가 많아지면 슈퍼컴퓨터로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과학적으로 봐도 정확한 예측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기상청 슈퍼컴은 바람, 기압, 수분, 온도, 밀도 등 일곱 가지 기본 변수를 토대로 수만~수십만 가지 하부 변수를 생성해 미분방정식을 푼 뒤 결과값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들 변수 중 하나만 미세하게 바뀌어도 결과값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설령 결과값이 제대로 나온다고 해도 사람이 이를 잘못 해석하는 순간 엉뚱한 예보가 된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 책임연구원은 “날씨 예보는 틀릴 확률이 굉장히 높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슈퍼컴에 적용돼온 핵심 소프트웨어(SW)가 외국산이라는 점도 잦은 오보의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이 SW를 국산화하고 있는 배경이다.

지구 온난화가 올 장마 등 이상기후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상이변은 지구적 현상이다. 중국 남부지역은 두 달째 이어지는 홍수로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수재민이 발생했다. 유럽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스페인 국립기상청은 지난달 30일 스페인 북부 산세바스티안 지역 기온이 관측 이래 최고치인 42도까지 올랐다고 밝혔다.
기온 변화 수준은 이미 ‘카오스’
환경부와 기상청이 지난달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따르면 지구 평균 지표 온도는 1880년부터 2012년까지 132년간 0.85도 상승했다. 반면 한국은 1912년부터 2017년까지 100여 년간 두 배가 넘는 1.8도 높아졌다.

과학적으로 볼 때 이 같은 온도 변화는 대혼돈(카오스)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에 가깝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해일을 몰고 온다’는 나비효과 이론을 창시한 에드워드 로렌츠의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 기후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방정식 내 특정 변수의 소수점 이하 수치(초기값)에 미세한 변화를 줬더니 결과값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났다는 실험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산이 많아 기후 예측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자연 조건에, 급속한 산업화까지 맞물려 한반도는 이상 기후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2018년 발간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2100년까지 지구 온도가 1880년보다 1.5도 이상 오를 경우 비가역적인 생태계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지은/이해성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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